FLIM BELLY

엔조

girlinhell 2026. 5. 25. 18:42

엔조(Enzo)

2026.05.20

⭐️1.5

 

엔조는 16살 소년이다. 엔조는 일반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하여 직업교육을 받고 공사장에서 일한다.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실물이 남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엔조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 진짜로 막 사이가 안좋은게 아니라 이역시 엔조가 가족에 적응을 못한다.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이 많고 명문대에 합격한 형, 교수인 아버지와 엔지니어인 어머니 사이에서 완벽하지 못한 존재로 떠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고 어머니는 다 존중해주지만 그마저 부담스러워한다. 

 

엔조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사장 일을 잘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블라드를 좋아한다. 무심코 들어간 공사장에서 블라드를 만나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일을 즐기든 않든 그냥 그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 같다. 오직 블라드를 위해서. 블라드를 향한 엔조의 사랑은 순수하고 솔직하다. 살짝 과한 면이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 한창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귀엽게 넘겨줄 만 하다. 엔조는 영화 내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엔조는 불안해 하는 것 같지만 불안해 하지 않는다. 모든 생각의 귀결점이 블라드이기 때문이다. 블라드는 우크라이나 출신 외국인 건설 노동자이다. 부유한 집안, 큰 저택에서 사는 엔조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엔조와는 달리 거칠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엔조를 더더욱 블라드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엔조는 부모님과 안전한 나라와 신분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블라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 출신이고 그곳에서부터, 그리고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들에게서 도망쳐왔다. 블라드는 어리숙한 엔조에게 별의 별 이야기를 해준다. 대부분 엔조의 일상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엔조는 더더욱 블라드에게 빠져든다. 블라드가 미성년자인 엔조를 두고 여자친구와 함께 클럽에 들어갔을때도 혼자 남은 엔조는 마치 블라드와 함께 밤을 보낸 것처럼 행복해한다. 엔조는 블라드처럼 되고 싶어하고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를 만지고 싶어한다. 껴안고 싶어한다. 입을 맞추고 싶어한다. 블라드는 엔조를 친한 동생처럼 여기고 챙겨주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엔조가 갑작스럽게 그리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했을때도 어른처럼 대처하고 딱 잘라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엔조를 걱정하고 살핀다. 모순적이다. 아무래도 엔조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의 간극 그리고 본인도 혼란스러운 감정때문에 그런거겠지. 엔조의 감정에 따른 블라드의 반응도 재밌다. 블라드는 마치 친동생처럼 엔조를 챙겨준다. 엔조가 밤에 갑작스럽게 자신을 만졌을때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잘라내고 그 다음날에는 하기로 했던 일을 끝까지 함께 마친다. 또 중간에 아이처럼 잠든 엔조를 깨우지 않고 자기 혼자 일을 다한다. 엔조를 많이 생각하고 아껴주는게 눈에 보인다. 그러나 엔조가 그 이상의 선을 넘으려고 하면 화를 내며 밀어낸다. 그리고 닫히는 문사이로 뛰어가 엔조를 살핀다. 자기가 엔조를 사랑하는 걸 인지를 못하고 부정하지만 그감정과는 별개로 엔조를 무척 아끼는 게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엔조랑 한바탕 몸싸움을 하고도 계속 엔조를 걱정하는 눈빛을 지우지 못하고 엔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엔조가 마지막에 공사장에서 떨어졌을때도 가장 먼저 달려가 살피고 엔조가 떨어진 게 자신과 관련되었다는 걸 눈치챈 후 자리를 피한다. 역시 혼란스러운채로. 그리고 죽어도 우크라이나에 돌아가기 싫다던 블라드가 그 이후 바로 귀향을 한다. 이번엔 엔조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후 블라드는 엔조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했냐고 묻는다. 블라드는 전쟁터에서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블라드는 그 친구를 보며 엔조를 떠올릴 것이다. 블라드와 엔조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단순히 블라드와 엔조의 러브 스토리로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가 주로 보여주는 것이 둘의 모습이 아니라 엔조가 방황하는 모습이 주이기 때문이다. 엔조는 일반 교육과정을 적응하지 못하고 직업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직업교육도 모처럼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엔조는 영화 내내 방황한다.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엔조가 방향을 찾았는지 않았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영화가 엔조의 사춘기 한부분을 그냥 묘사하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던지 로맨스를 그린다던지 그런게 아니라 그냥 엔조의 인생 한부분 진짜 시작되기 직전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되게 대단하다던지 재밌다던지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다. 나는 주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춘기의 요동치는 소년의 감정과 방황하는 모습은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이상했던 점은 엔조의 아버지와 엔조의 관계성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는 엔조를 꾸짖는 동시에 집착한다. 엔조가 밤늦게 어딜 다녀왔는지 캐묻고 걱정한다. 평범한 아버지의 걱정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엔조가 샤워하는 방을 오래 쳐다보고 빨래를 치워주는데 이 앵글이 조금 이상하다. 평범한 행동을 길게 잡아 뭔가 낌새가 있는 것 같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상하다. 이게 내 착각인가 느낄때즈음 영화 끝자락에 정말 이상한 카메라 무빙을 넣는다. 바로 엔조가 공사장에서 추락하고 병원에 입원해 깨어났을때 아버지가 엔조를 맞이하는데 엔조의 어깨, 팔, 다리를 천천히 주무르는 장면을 그대로 카메라가 손을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엔조를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성애적 감정으로 보는 건가 싶었지만 그 이상의 힌트는 주지 않아 의문으로 남았다. 진짜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혹은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도대체 왜 그런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어서 영화가 끝나고 혼란만 남았다. 그래서 보고 나서 썩 기분이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세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첫번째는 엔조가 클럽 입뺀을 당하고 혼자 집에 오다가 한 절벽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솔직히 이 장면에 특별한 의미가 있고 그래서 특별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블라드를 짝사랑하는 가운데 블라드가 자신을 집에 초대했고 끝까지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늦게까지 함께 있었고 그의 일상의 한 부분을 함께 했고 그래서 신나고 벅찬 감정이 드는 동시에 혼자 남은 게 속상한, 그리고 이대로 집에 가기 싫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이 고요한 밤바다와 아름다운 밤하늘의 풍경과 교차되어 보여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섬세하고 또 특별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두번째는 엔조가 사촌들이랑 수영하는 장면이다. 엔조가 부모님이랑 진로관해 말다툼을 하고 난 후에 아이들은 협곡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놀고 그 위를 어른들이 보면서 엔조의 사춘기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엔조의 아버지는 엔조가 진로가 정해지는 소중한 시기에 공사장에서 시간 낭비를 하며 재능을 썩히고 있다며 불평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자식이 방황에 빠져있는데 어떡하야 자식 앞에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엔조가 하고 있는 건설일이다.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말 다음에 엔조가 아름다운 바다 위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협곡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엔조는 자신의 순리대로 방황할때는 방황하고 자리 잡을 때는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를 가로 막는 것은 아버지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록 내가 해석한 것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통해 은유를 담아낸 것이 재미있어서 오래토록 기억나는 장면이다.

마지막은 엔조의 사랑고백 장면이다. 사랑고백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명확한 사랑고백 장면이라고 느낀 장면이 있었다. 바로 엔조가 아버지와 싸우고 블라드의 집으로 도망쳐왔을때 블라드와 밥을 먹다가 블라드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에 대해서 묻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엔조는 블라드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싸우면 자기도 따라가서 싸우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블라드는 엔조에게 너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나 엔조는 형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라고 말한다. 블라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엔조는 엔조의 방식대로 사랑을 고백했고 블라드는 이를 알아듣고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멜랑꼴리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순수하고도 솔직한 사랑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엔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좋았던 장면도 있었으나 불편한 장면이 더 많았던 요상한 영화였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여자 품평하는 건설 공사장 사람들이라던지 블라드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여자친구 속옷차림의 사진을 찍는 엔조라던지.... 뭐 그래도 뇌를 빼고 아름다운 프랑스의 풍경만을 구경하고 싶다면 볼만한 영화겠다. 처음에 포스터나 오프닝을 보고 콜미바이유어네임이 생각났는데 거리가 먼 영화고 감독이 콜바넴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그래서 비슷한 장르와 분위기를 생각하고 보면 안될 것 같다. 로맨스보다는 사춘기 소년의 방황 이야기가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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