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저튼3는 전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휘슬다운 즉 페넬로페 페더링턴의 이야기이다. 겉으로만 보면 오직 콜린 브리저튼과 결혼하기까지의 로맨스이야기로 보이지만 이 전체를 아우르는 진짜 주제는 주체적인 여성서사의 서막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는 가십의 본질.
먼저 가십에 대하여 논해보자. 가십은 신문, 잡지 등에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소문이나 험담 따위를 흥미 본위로 다룬 기사라는 뜻이다. 브리저튼 시리즈에서 가십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체 스토리가 레이디 휘슬다운의 가십 소식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브리저튼 시리즈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가 이렇게 빨리 공개된 것이 조금 아쉽고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즌 1 마지막에서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가 밝혀지고 시즌 2에서 페넬로페는 조금 다르게 보여진다. 그저 이웃집 친구의 오빠를 짝사랑하는 철부지 소녀가 아닌 성공한 작가로서 이중생활을 하는 지혜로운 여성이다.
극 중에서 페넬로페는 왕비의 추적과 크레시다의 협박 아래 모든 것을 고백하고자 스스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이 펜을 쥐게 된 이야기와 그동안 소식지를 통해 권력을 얻게 된 얘기, 그 권력을 오용하고 과소평가하여 저지른 실수들을 고백한다. 그리고 호소한다. 레이디 휘슬다운 소식지의 시작은 사교계의 가십거리를 찍어나르는 것에 불과했지만 독자가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록 얻는 교훈들이 있었다고. 항상 그림자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페넬로페가 스스로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사교계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또한 글을 통해 자신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소외되는 약자들을 대변하고 강자가 약자에게 저지르는 부당한 일들을 공론화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글 때문에 상처입고 피해를 입은 모두에게 사과하고 왕비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 자신의 글들로 더 큰 일을 이뤄나갈 수 있게 글을 계속 쓸 수 있기를 간청한다. 그리고 왕비는 약간의 가십없이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라며 그녀를 처벌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이 페넬로페의 고백은 정말 용감하고 멋있다. 이 시즌3를 처음 봤을때는 그녀의 용감함과 위대함을 미처 몰라보고 브리저튼 시리즈가 주는 매혹적인 부분만을 평가하며 혹평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페넬로페가 얼마나 지혜롭고 용감하고 멋있는 여성이며 이 시리즈와 세계관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체적인 여성임을 알아보게 되었다. 시리즈 전체를 아울러 스스로 행동해서 무언가를 이뤄내고 실수하고 실수에서 배우며 나아가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히 드러낼 줄 알고 이 당당함으로 상대의 부족한 면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다. 페넬로페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은 이렇게 불러야 할까요?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저도 압니다, 제가 한 일은 웃을 일이 아니죠.
처음에는 아무도 제 글을 진지하게 봐줄 거라 생각 안했어요. 왜 아니겠어요? 아무도 절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봐준 적이 없으니.
이제야 그 기분이 얼마나 흔한지 알게 됐어요.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젊은 처자인 기분. 스스럼없이 공개된 삶을 사는 여러분께 감탄한 나머지 여러분을 글로 썼습니다. 여러분을 글로 스면서 불현듯 제게도 삶이 있는 듯했고 권력이 있는 듯 했죠. 이곳에 계신 누구든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셨다면 그 중독성을 아실 겁니다. 그러나 전 그 권력을 경솔하게 다뤘죠. 발각되지 않을 그림자에 숨어 비방하는 건 쉬웠어요. 하지만 공개된 삶을 사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단 걸 알았어요. 자신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걸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아는 용기도요.
우리는 모두 수다를 떨고 가십을 나눕니다. 가십은 정보에요. 연대감을 형성하죠. 특히 이야기에서 소외된 우리는 더더욱요. 그러나 제가 가진 가장 큰 정보를 더는 숨길 수 없습니다. 제 정체죠. 왕비님께 무척 감사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왕비님의 교묘한 전략이 절 그림자 밖으로 밀어내셨어요. 제가 글을 계속 쓰도록 허락하신다면 더 책임감 있게 임하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참회이며 간청입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우리 모두 수다를 떨고 가십을 나눈다는 것이다. 맞다. 친구들과 만났을때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가십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떻고 애인이 어떻고 등 여러 이야기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가십을 나눈다면 레이디 휘슬다운이 이전에 다루었던 가십이 문제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 시즌에서 보았든 레이디 휘슬다운은 익명의 힘으로 사교계 사람들의 부정한 행동을 폭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적인 부분(마리나의 임신사실, 엘로이즈의 정치행동, 콜린을 조롱했던 칼럼)이 여러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명예가 중요한 사교계에서 이러한 민감한 폭로들은 정의를 구현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감정과 의도에서 기인한 힘은 상대를 곤란에 처하게 만들었다. 정의를 구현했던 가십은 버부룩 경이 시녀를 임신시켜 내쫓았다는 것을 공론화해 사교계에서 제명시켜버린 것, 한 귀족부인이 시녀를 부당하게 폭로해 그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킨 일들이다. 이들은 모두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것을 공론화해 모두에게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사적인 부분들은 지극히 페넬로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한 행위들이다. 이러한 가십은 그저 험담을 형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페넬로페가 말한 연대를 형성하는 가십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가 몰래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매우 잘못된 행위였을 경우 모두 공개적으로 질타해도 된다. 그러나 개인 사정과 관련된 사적인 문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말을 얹거나 험담하는 것은 무례하다. 페넬로페는 레이디 휘슬다운으로써 이 점을 크게 깨달았고 진심으로 사과를 구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책임감있게 임할 것을 약속했다.
가십의 양면적이 면은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어떤 부분이 쉽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그걸 쉽게 잊는 것 같다. 누군가의 모르는 속사정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겉만 보고 속단하려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오늘도 그런 일을 겪었다. 오늘 그 일을 겪고 페넬로페의 고백이 생각났다. 우리 모두 가십을 하고 그것으로 연대한다는 것을. 그러나 이런 공식이 성립되려면 그 가십이 제 3자로써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당위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쉽게 말을 얹거나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냥 왜 남의 인생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가 모르겠다. 남이사 뭘하든 말든 진짜 무슨 알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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